양승태 사법부, 행정부와 '재판개입' 의혹.. 4년 만에 정점 양승태 "무죄"
'수사팀장' 한동훈 "대법원이 수사 의뢰한 사건".. 홍준표 "검사는 결과에 직과 인생 걸어야"
이탄희 "양 전 대법원장의 수족들은 귀신의 지시를 받은 것이냐"
법조계 "사법 독립 포기" vs "文 정부 무리한 기소"

'사법농단' 혐의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심에서 전체에 대해 무죄 판단을 받으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법농단' 혐의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심에서 전체에 대해 무죄 판단을 받으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박근혜 정부 시절 양승태 대법원이 사법부의 이익을 위해 행정부와 각종 재판을 거래했다는 의혹인 '사법농단' 혐의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심에서 전체에 대해 무죄 판단을 받으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없어 남용이 아니다'라는 직권남용 법리에 따른 무죄 선언을 두고 법조계 내에서도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판결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당시 수사팀장이었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법원 판결에 대해 "사실상 대법원 수사의뢰로 진행했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자 홍준표 대구시장은 한 위원장에게 "무책임·무능한 검사"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양승태 사법부, 행정부와 '재판개입' 의혹.. 4년 만에 정점 양승태 '직권남용 무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이종민 임정택 민소영 부장판사)는 지난 26일 약 4년 11개월(1천810일)의 심리 끝에 양 전 대법원장의 47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사법농단 사건의 핵심인 '재판개입' 의혹의 일부 사실관계를 인정하는 것을 전제하면서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를 인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사법농단 사건은 양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인 2017년 2월, 당시 판사이던 이탄희 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사직서를 내면서 불거졌다.

당시 이 의원은 법원행정처 발령 후 양 전 대법원장으로부터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를 무산·축소할 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이에 반발했다.

그러자 양 대법원장은 2017년 3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자체 조사에 나섰다. 조사가 진행되던 그해 4월 대법원이 인사 불이익을 줄 목적으로 특정 판사들의 성향과 동향을 파악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관리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논란이 더욱 커졌다.

 

대법원은 같은 달 이규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를 부당하게 견제한 사실은 있으나 블랙리스트 의혹은 허위라는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전국 법원의 대표 판사들이 처음으로 전국법관대표회의를 구성해 재조사를 요구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퇴임했으며 후임인 김명수 대법원장은 2017년 9월 취임하면서 블랙리스트 의혹을 추가 조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법원은 2018년 1월과 5월에 2차, 3차 조사를 진행했고 법원행정처의 재판 개입 문건과 판사 사찰 문건을 발견해 공개했다. 다만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블랙리스트 문건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김 대법원장은 그해 5월 대국민 사과를 하고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는 2018년 6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서 개시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수사를 지휘했고,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3차장검사로 수사팀장을 맡았다.

검찰은 '사법농단의 핵심'으로 꼽힌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네 차례 소환조사한 뒤 2018년 10월 구속영장을 청구해 발부받았다. 이어 12월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기각됐다.

검찰은 2019년 1월 헌정 사상 최초로 전직 사법수장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했다. 같은 달 세 차례 소환조사 끝에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해 발부받았고, 양 전 대법원장은 전직 사법수장으로는 처음으로 구속됐다.

하지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해 총 14명의 피고인 중 13명에 대해 하급심 법원 판단이 나왔거나 대법원에서 확정된 가운데, 일부 혐의만이라도 유죄를 선고받은 사례는 이민걸·이규진 전 부장판사 2명뿐이다.

피고인 대부분이 무죄 판결을 받은 이유는 '권한이 없으므로 남용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논리이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해서도 '대법원장은 재판에 개입할 직권이 없고, 설령 직권을 행사했다고 보더라도 이를 남용했다고 할 수 없다'는 이유로 혐의가 인정되지 않았다.

다만, 하급심의 결론을 종합하면 '최상위 실행자'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내달 초 1심 선고에서 일부 유죄 판결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임 전 차장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하며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 등 재판에 개입하고, 법원 내 연구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등에 대해 압력을 가했다는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돼 기소된 전·현직 판사 중 아직까지 1심 선고가 이뤄지지 않은 유일한 인물이다. 사법농단 의혹의 마지막 피고인인 셈이다.

양 전 대법원장 사건을 맡은 1심 재판부는 임 전 차장이 연루된 '서기호 전 국회의원 재임용 탈락 사건'과 관련해 임 전 차장의 직권남용 혐의가 인정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서기호 사건의 기일을 진행하라고 지시 및 요청한 것은 임종헌의 직무권한에서 벗어난 것이고, 필요성·상당성도 없어서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라고 판단했다.

특히 재판부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난하는 내용의 기사를 사법정책심의관에게 대필하게 한 사건에 대해서도 임 전 차장의 직권남용이 인정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헌재소장에 대한 비판적 내용의 자료를 제공하는 것은 보도자료 제공으로도 충분해 보이며, 사법정책심의관이 이에 대해 거부의사도 표시했다"라며 "임종헌이 사법정책심의관에게 초안을 작성하게 한 것은 필요성과 상당성이 없어 직권남용에 해당하다고 판단한다"라고 말했다.

'수사팀장' 한동훈 "대법원이 수사 의뢰한 사건".. 홍준표 "검사는 결과에 직과 인생 걸어야"

이번 판결에 대해 여야의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의 무리한 사법부 장악에 대한 사법부의 정당한 판결이라고 판단했으며, 더불어민주당은 당시 수사를 맡았던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한동훈 3차장의 명확하게 입장을 밝히는 게 순서라고 지적했다.

전광재 국민의힘 대변인은 27일 국회에서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문재인 정부의 무리한 사법부 장악에 대한 사법부의 정당한 판결이었다"고 평가했다.

당시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수사를 맡았던 서울중앙지검 검사였다는 지적에는 "검찰의 역할을 충실히 진행했던 것"이라며 "사법부가 판결한 것에 대해 존중한다는 게 당의 공식 입장"이라고 답했다.

'사법농단' 사건의 핵심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1심 무죄 판결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사실상 대법원의 수사 의뢰로 진행된 사건"이라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29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출근길에서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판결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들 질문에 이같이 밝혔다. 그는 "아직 중간 진행 상황에서 수사에 관여했던 사람이 직을 떠난 상황에서 말하는 건 적절치 않을 것 같다"며 "여러 가지 생각할 점이 있던 사안이고 나중에 여러 가지 평가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검사 출신인 홍준표 대구시장은 페이스북에 "검사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수사를 하는 사람으로 그 결과에 대해 직과 인생을 걸고 책임지는 수사를 해야 한다"며 "유무죄는 법원의 판단이라고 방치하는 검사는 무책임하고 무능한 검사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사법농단' 판결과 관련한 한 위원장의 태도를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면서 "검사가 정치에 맛 들이면 사법적 정의는 사라지고 세상은 어지러워진다"고 덧붙였다.

이탄희 "양 전 대법원장의 수족들은 귀신의 지시를 받은 것이냐"

관련 의혹을 처음으로 알린 이탄희 민주당 의원은 26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무죄 판결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의 수족들은 귀신의 지시를 받은 것이냐"고 꼬집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확한 건 판결문을 읽어보고 말해야겠다"면서도 "재판개입 사실은 인정된다면서 무죄라면, 재판거래 피해자들(강제징용 피해자, KTX 승무원, 세월호 가족들과 언론인 등)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느냐"고 따졌다.

이 의원은 29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법원행정처가 재판 개입하고 판사 뒷조사했다라는 건 이번 판결에서 인정이 됐는데, 판결 내용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몰랐다는 거다"라며 "정말 비상식적인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법원행정처는 법원장의 비서조직이고, 이 조직에서 양 대법원장 수족 역할을 했던 게 임종헌 법원행정처 (전) 차장이다"라며 "이분 건배사가 'KKSS'라고 한다. 까라면 까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라인데, 6년 내내 이런 건배사를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임 전 차장이) 양 전 대법원장 임기 6년 중에서 5년을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한 심복"이라며 "이런 사람이 일을 주도했는데 양 전 대법원장 모르게 했다? 나중에 들통나면 어떻게 되려고 그렇게 했겠냐.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사법농단 연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은 1, 2심에서 모두 유죄판결을 받았는데도 양 전 대법원장이 무죄를 받은 데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이규진 판사의 업무 일정을 보면 CJ 보고, 그다음 강경대응 주문이라고 메모가 돼 있는데, CJ라는 건 치프 저스티스(Chief Justice) 대법원장을 말하는 것"이라며 "대법원장에게 보고했고 강경대응하라고 대법원장이 주문했다는 걸 써놨기 때문에 (당시) 공모로 인정됐는데, 지금 판결에선 공모로 인정을 안 했다. 상식에 반한다"고 비판했다.

또 1심 재판부가 양 전 대법원장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하자 "나쁜 일을 하면 유죄인데 더 나쁜 일을 하면 무죄라는 것"이라며 "(양 전 대법원장이) 재판에 개입하는 게 권한이 없는 일인데, 권한이 없는 일을 아예 했기 때문에 무죄다 이런 법리를 우리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조계 "사법 독립 포기" vs "文 정부 무리한 기소"

이번 판결을 두고 법조계의 평가도 엇갈렸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은 이날 양 전 대법원장 등의 1심 무죄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먼저 민변은 정부와의 재판거래로 사법부의 독립성을 중대하게 훼손한 사법농단 사건의 책임 법관들에게 면죄부를 줬다며 1심 재판부의 판결에 깊은 유감을 표했다.

민변은 "재판의 독립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삼권분립의 당연한 요청으로 법치주의의 중핵을 이룬다"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재판 독립에 관한 헌법과 법률의 보호가 재판개입에 대해 면죄부를 준 셈"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양 전 대법원장 등이 개별 재판에 개입하기 위해 실행한 구체적 행위를 지시할 외관상의 사법행정권한을 갖고 있었다면 이는 '일반적 직무권한'이라 볼 수 있다"며 "재판에 개입한 고위 법관들에게만 유독 '일반적 직무권한'을 인정하지 않는 해석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또 "블랙리스트 관리, 헌법재판소 재판 관여, 연구회 와해 시도 등 사법농단이 실재했음에도 형식적인 법리해석과 적용으로 양 전 대법원장 등에게 범죄성립을 인정하지 않은 1심 판단은 구체적 정의에 반하는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사법농단 책임자들에게 면죄부를 준 법원은 스스로 사법의 독립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며 "이번 판결로 '사법농단'은 더욱 은밀한 방식으로 재발할 수밖에 없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반면, 한변은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무죄 판결문은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범행 근거이자 그들에 대한 공소장이라며 무리한 기소를 규탄했다.

한변은 "소위 '사법농단' 사건의 발단은 당시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하던 이탄희 판사(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가 제시한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에서 시작됐다"며 "대법원의 자체 조사에서도 범죄로 볼 만한 직권남용이 없었다"고 맞섰다.

나아가 "문 전 대통령이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사법농단 의혹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고 해괴한 주문을 하고 김 전 대법원장이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복창하면서 평지풍파가 온 나라를 뒤덮게 됐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김 전 대법원장이 수사 의뢰했을 때 이미 사법부의 위신과 권위는 정치권력에 예속된 검찰에 의해 갈가리 찢기고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며 "사법부의 독립을 온전히 지키고 재판의 신뢰를 유지해 나가기가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 극명하게 보여준 시간이었다"고 평가했다.

끝으로 "한변은 검찰의 대오각성과 문 전 대통령, 김 전 대법원장의 권한 남용 여부에 대한 즉각적인 수사 착수와 '사법농단 사건' 전체에 대한 항소를 완전히 포기할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출처 : 폴리뉴스 Polinews(https://www.poli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