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3000명의 판사는, 각자 흩어져 자기 업무와 자기 판결만 하는, 3000개의 새끼 사법부가 되는 것이 아닌가요? 그렇게 되면, 법관들은 무지무지하게 약한 존재가 되어버릴 겁니다”

⊙ 사법부가 태풍 앞의 촛불… 판사는 이념·정치 세력의 압력 두려워해
‌⊙ “국가안보 무너져 북한 치하에 들어가면, 자유와 인권이 무슨 소용 있겠어요?”
⊙ 사법부의 첫 번째 사명은 자유민주주의 헌법체제의 수호
⊙ “구조조정 반대파업 불법 등 기존 판결 뒤집힐 가능성 커 걱정스러워”
⊙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 폐지… 결국 사법소비자인 국민이 손해

李勇雨
1942년생. 경북사대부고, 서울대 법대·사법대학원 졸업, 1964년 제2회 사법시험 합격 / 대구고법 부장판사, 서울고법 수석 부장판사, 수원지방법원장, 서울지방법원장, 대법관 역임 / 現 법무법인 로고스 고문변호사
사진=조현호
13년 전인 2005년 10월 10일 이용우(李勇雨·75) 변호사는 대법관 직에서 물러났다. 당시는 노무현(盧武鉉) 정부 시절로 이용훈(李容勳) 대법원장이 취임한 지 한 달도 안 됐을 때였다. 그는 대법관 퇴임사에서 “제가 한 많은 판결을 국민과 역사 앞에 내놓으면서 두려운 마음으로 법원을 떠난다”고 밝혔다.
 
  기자는 최근 그의 퇴임사를 다시 읽어보았다. 이 문장이 눈에 확 들어왔다.
 
  〈… 저는 우리의 헌법상 체제인 자유민주주의를 너무나 사랑합니다. 아무리 통일이 우리의 염원이라 하더라도 자유민주주의가 없는 통일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통일과 민족에 대한 열정이 지나친 나머지 자유민주주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는 상황에 대하여 저는 걱정하고 있습니다. 저는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지지합니다. (중략)
 
  사회주의는 달콤하고 정의로운 것 같지만 이상에 불과할 뿐 현실을 오히려 퇴보시키는 사상임은 역사가 증명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사회주의적 사고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기자는 그의 퇴임사가 13년 전에 썼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마치 오늘의 한국 사회를 내다보고 쓴 예언서처럼 느껴졌다. 지난 11월 6일과 11일, 서울 강남의 한 법무법인 사무실에서 이용우 전 대법관을 만났다.
 
  우리는 먼저 종교적 병역 거부에 대한 대법원의 최근 판결, 그리고 ‘변희재 종북(從北) 발언’ 판결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두 판결 모두 그가 관여했다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법원은 지난 11월 1일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대법관 9(무죄)대 4(유죄) 의견으로 “종교와 신념에 근거해 병역을 거부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종교적 병역 거부 문제는 지난 2004년 7월, 이 변호사가 대법관 시절에 판결을 내린 사항이다. 당시 최종 판단은 유죄. 그 역시 유죄 입장이었다. 13인의 전원합의체 대법관 중 이강국 대법관 1명만 반대의견이었고 보충의견 5명을 포함, 12명의 대법관이 유죄 의견이었다. 이 전 대법관의 말이다.
 
  “그때 대법관들의 의견은 유죄설과 무죄설로 갈렸고, 유죄설은 다시 병역 의무를 대체하는 수단, 즉 대체복무제 도입을 언급하는 입장과 언급하지 않는 입장으로 나뉘었어요.
 
  13명의 대법관 중 1명만 무죄설이고 나머지는 모두 유죄설인데, 유죄설 중에서 대체복무제 도입을 주장하는 입장은 4명이었어요. 무죄설 입장도 대체복무제 도입을 주장한 만큼 모두 5명이 대체복무제의 필요성을 주장한 셈이 됩니다.
 
  저는 유죄설 중 대체복무제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어요. 무죄론자들은 양심의 자유에 동등한 비중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이유는 국가권력이란 기본적으로 국민의 기본 인권을 실현시키는 데 기여해야 하고 기본권의 존중에 기속돼야 한다는 헌법상 의무를 부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국가안보는 국민의 기본 인권보다 우선”
 

  이 전 대법관은 그러나 “병역 의무는 곧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한 것인데 국가의 안보와 기본 인권 사이에 우선순위를 둔다면 당연히 국가안보에 두어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국가안보가 무너지면 자유나 인권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안보가 있고 난 이후에야 비로소 자유와 인권을 누릴 수 있어요. 안보가 무너져 우리가 북한의 치하에 들어간다면 자유와 인권이 무슨 소용 있겠어요?
 
  무죄론자들의 주장처럼 국가권력은 기본 인권의 실현에 기여하고 이에 기속되어야 한다는 것은 먼저 국가안보가 있고 난 이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대체복무제와 관련, 그는 “이론적으로는 이상적인 대체복무 방안을 상정할 수 있을지 모르나 현실 적용에 부작용이 너무 많이 생겨, 오히려 제도를 만들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의 대법원은 이 전 대법관과 달리 전향적인 판결을 내렸다. 국가안보보다 개인의 기본 인권이 우선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현재 그가 걱정하는 현실 적용의 부작용이 터져 나오는 상황이다.
 
  이 전 대법관은 이번 판결에 또 다른 놀라움을 느꼈다고 한다.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 5명이 똘똘 뭉쳐 한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박정화·민유숙·김선수·이동원·노정희 대법관 등 5명은 모두 작년 7월부터 지난 8월 사이 문 대통령이 차례차례 임명했다. 언론에서는 이들을 ‘신(新)독수리 5형제’라고 부른다.
 
  기존의 ‘독수리 5형제’는 노무현 대통령 때 임명된 이용훈 전 대법원장 시절(2005~2011년) 진보적 의견을 자주 냈던 박시환·김영란·김지형·이홍훈·전수안 대법관을 일컫는다.
 
  ‘신독수리 5형제’는 지난 10월 30일에도 한목소리를 냈는데 이른바 ‘보수논객 변희재씨의 종북 발언’ 사건에서였다.
 
  이날 대법원은 통합진보당 이정희 전 대표 부부가 변씨와 《조선일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상고심에서 변씨가 15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 전 대표를 앞으로도 ‘종북’ ‘종북 세력’이라 부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당시 대법관들은 8대 5로 의견이 갈렸는데 ‘파기’가 아닌 ‘상고 기각’을 택한 5명의 대법관이 모두 ‘신독수리 5형제’였다. 바로 이 소송의 대리인이 이용우 전 대법관이었다.
 
 
  從北을 從北이라 못 부른다면…
 
지난 11월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김명수 대법원장과 이날 퇴임하는 김소영 대법관이 종교적 병역 거부에 대한 판결문을 낭독하고 있다.
  그의 말이다.
 
  “2014년 8월로 기억되는데 어느 날 《조선일보》를 읽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어요. 서울고등법원이 변희재씨와 《조선일보》에 대해 패소 판결을 내렸는데, 이들이 원고(이정희)의 명예를 훼손하는 불법행위를 하였다는 겁니다.
 
  내용인즉, 변씨가 트위터상에서 통합진보당 이정희 전 대표 부부를 ‘종북 세력’으로 지목했는데, 이를 또 《조선일보》가 인용해 보도했다는 것이죠. 한마디로, 그의 이념 성향을 ‘종북’이라고 말하면 허위사실 유포에 해당되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저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보도가 과연 사실인지 묻고 싶었어요. 그날로 서울고등법원의 판결문을 구하여 읽어보니 과연 사실이었어요. 저는 변씨가 혼자 소송을 하고 있음을 알고 무료 변론키로 마음먹었습니다.
 
  제가 이 문제로 특히 흥분한 것은 대법원 재직 시에 이념논쟁에 관해 표현의 자유를 대폭 확대하는 판결을 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 판결은 한국언론법학회로부터 그해의 우수 언론 분야의 판결로 선정되어 상까지 받았기에 특별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기자는 ‘변희재씨 종북 발언’과 관련한 이 전 대법관의 상고이유서 서문을 읽어보았다. 서문에서 그의 고뇌를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일부 인용하면 이렇다.
 
  〈… 사법부의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사명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헌법체제를 수호해야 하는 일입니다. 오늘의 일부 젊은 법관들에게는 과연 그러한 소명의식이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하는 판결들이 수시로 나오고 있습니다. 아무리 자유민주주의 사회라 하더라도 자유민주주의를 전복시키려는 활동의 자유까지 허용될 수는 없습니다. (중략)
 
  이 판결이 그대로 확정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헌법체제를 허물어뜨리려는 활동에 대해 경각심을 일으킬 예보조차 하지 못하게 됩니다. 바로 북한의 지배하에 예속되어 들어가는 길을 터주는 것이 아닐까요.
 
  자유민주주의 헌법체제를 기필코 수호하려는 일념에서 이념논쟁의 제일선(第一線)에 서서 싸우는 피고로서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이 상고이유서를 씁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전 대법관의 노력으로 소송은 이겼으나 대법원 내 인적 구성의 획일성 우려가 커져 버렸다. 그의 말이다.
 
  “현 정권이 지향하는 이념에 맞는 판결을 할 가능성이 커졌어요. 변희재씨 종북 발언, 양심적 병역 거부 판결도 그렇고, 향후 과거사와 관련된, 전임 대법원장 시절의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문 대통령 임기 중에 대법관이 계속 진보 성향의 인물로 바뀌면 대법원의 다양성이 없어질 겁니다. 대법관 구성은 어느 정도 좌와 우의 생각을 가진 이들이 공존해야 하는데… 아… 이제는 공존이 아니라 일변도가 되지 않을까요?”
 
 
  잊을 수 없는 ‘구조조정 반대파업’ 유죄 판결
 
서울 서초구, 대법원(왼쪽)과 검찰청 건물이 마주 서 있다. 현재 검찰은 검사 수십 명을 동원, 법원을 샅샅이 뒤져 사법농단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이용우 전 대법관에게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판결이 있다. 바로 구조조정에 반대해 벌이는 쟁의 행위를 불법 파업으로 본 판결이다. 지난 2002년 2월 26일 판결을 내렸으니 16년이 지났다. 그러나 대법원 인적 구성이 진보 대법관으로 바뀌면서 이 판결도 새로운 운명을 맞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어쩌면 앞으로 회사가 문을 닫게 돼도 파업이 두려워 구조조정을 못할지 모른다.
 
  먼저 그가 판결을 내릴 2002년 당시로 돌아가 보자. IMF 직후 적자투성이 공기업이 몸집을 줄이기 위해 몸부림칠 때다. 한국조폐공사 강모 노조 부위원장과 노조원들은 1998년 7월 대전과 대구 등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공공금융부문 일방적 구조조정 등 반대 결의집회’를 주도했다. 이들은 조폐공사 옥천 조폐창과 경산 조폐창 통폐합 방침에 반대해 98년 11월부터 3개월간 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는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불복한 검찰이 대법원에 상고했다.
 
  당시 대법원 1부 주심이던 이용우 대법관은 업무방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내며 판결문에 이렇게 썼다.
 
  〈… 정리해고나 사업조직의 통폐합 등 기업 구조조정의 실시 여부는 경영 주체에 의한 고도의 경영상 결단에 속하는 사항으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불순한 의도로 추진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를 반대하는 노조의 쟁의 행위는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
 
  이 전 대법관은 그때의 일을 이렇게 회고했다.
 
  “참 힘든 사건으로 기억합니다. 노동사건에서 노조 의견을 반영하는 판결을 하면 다수로부터 박수는 받겠지요.
 
  우선 정리해고를 당한 근로자와 가족은 얼마나 아픕니까. 절망적이지요. 그런 근로자들의 아픔에 매달리는 것은 근시안적 접근이라 생각했어요. 멀리 생각하면 (구조조정으로) 경쟁력을 회복해서 기업이 살아나면 과거에 해고했던 근로자가 다시 들어올 수도 있고, 새로운 신규 일자리가 생길 수도 있어요. 하지만 기업이 죽으면 근로자가 어딨나요? 당장은 아프지만 조금 멀리 보고 기업의 경쟁력을 살리는 것이 결국엔 노동자도 살고, 나라 경제도 발전하고, 전 국민에게 배분할 파이도 커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이 판결은 좌파 정부인 김대중 정부 때 내린 판결이에요. IMF가 터져서 대한민국호(號)가 침몰하던 때였죠. 당시 김대중 대통령도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국민이 다 죽는다. 30명은 우선 내려라. 그러면 70명으로 가라앉는 배를 끌어 올려 회복한 후에 다시 30명을 태우겠다’고 해서 구조조정을 밀고 나갈 수 있었죠. 그러나 민주노총, 한국노총, 심지어 노동법 학계로부터도 (저는) 엄청난 비난을 받았습니다. 정리해고의 명분인 ‘고도의 경영상 판단’, 기업의 권리, 즉 ‘경영권’이라는 게 어디 있느냐는 비난이었어요.”
 
 
  업무방해죄의 運命은 다시…
 
지난 9월 13일 오전 법원의날 70주년 기념식이 열린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대법관의 구속을 촉구하고 있다.
  당시 그가 쓴 판결문을 읽어보았다.
 
  〈… (조폐)공사가 수차 노조에 (조폐)창 통폐합의 불가피성을 설득하며 그에 따른 해고 문제를 협의하려고 노력하였음에도 노조는 창 통폐합의 백지화만 고집하면서 쟁의 행위에 나아간 이 사건에서 위 단체협약 규정에 의하여 이 사건 쟁의 행위가 그 목적의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도 없다 할 것이다.…〉
 
  계속된 그의 이야기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 때 임명한 소위 ‘독수리 5형제’라는 진보적 대법관이 들어서면서 ‘왜 구조조정 반대파업이 불법이냐’ ‘왜 업무방해죄가 되느냐’ 논란이 일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5명의 진보적 대법관에게 양보를 했어요. 구조조정 반대파업은 불법이지만 모든 불법파업이 업무방해죄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업무방해죄를 적용토록 한 것이죠. 다시 말해, 노조가 사측에다 파업 전 미리 계획과 방식을 구체적으로 알리면 불법이 아니라고 봤어요. 전격적인 파업으로 회사에 극심한 혼란을 초래할 때에만 업무방해죄가 된다는 것이죠. 그 외의 경우엔 불법파업을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는 할 수 있어도 형사상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는 없게 된 것이죠.”
 
  당시 13명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독수리 5형제’ 대법관의 반대의견을 물리치지 못하고 많이 양보한 판결을 내린 것이었다.
 
  “이 판결 이후 ‘앞으로 구조조정 반대파업을 막기 어렵겠구나’ 하고 걱정을 많이 했는데 금방 걱정이 현실로 나타나더군요. 판결 후 얼마 안 있어 만년 적자인 한국철도공사가 파업을 했어요. 세금으로 적자를 메우니까 경영을 합리화해서 적자를 줄여보자는 게 정부의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구조조정을 밝히니까 노조가 파업을 한 것이죠.”
 
  철도노조는 2009년 구조조정 반대와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사측과의 교섭에 나섰지만 결렬되자 노조원 이모씨 등 수십 명이 파업을 일으켰다. 철도노조는 그해 11월 5~6일 지역별 순환파업, 11월 26일~12월 3일 전면파업을 진행했었다.
 
  2심 법원이 앞서 ‘독수리 5형제’의 대법원 판례 변경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자, 이번에는 검찰이 대법원에 상고를 했다. 이때의 대법원 판결은 2014년 8월 27일 선고됐는데 당시 주심 대법관은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이 임명했었다.
 
  이 전 대법관은 “양승태(梁承泰) 대법원장 체제에서 기존 판례의 틀을 유지하면서 예외 조항의 폭을 넓혔다. 사실상 구조조정 반대파업에 업무방해죄가 되는 범위를 넓힌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2014년 8월 27일) 양승태의 대법원은 “철도공사는 노조가 순환파업과 전면파업을 실제로 강행하리라고 예측하기 어려웠다고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철도노조 이씨 등의 상고심에서 무죄 판결한 원심을 유죄 취지로 파기했다.
 
  이 전 대법관의 계속된 말이다.
 
  “이 판결로 양승태 대법원장이 노조의 공격을 받았어요. 지금 ‘사법농단’ 사건이 터지고 민노총 등으로부터 양 전 대법원장이 공격받는 이유가 이런 판결들 때문이죠. 또 전교조 뜻에 반하게 비합법화를 인정한 판결이나 국가보안법 혐의로 이석기 전 의원을 구속한 판결도 진보좌파 진영에서 뒤집고 싶은 보수적 판결들이라 봅니다. 기존 판결들이 현 대법원장 체제에서 뒤집힐 가능성이 커 걱정하고 있어요.”
 
 
  대법원이라는 ‘울타리’ 사라진 사법부
 
  이용우 전 대법관은 경북 의성이 고향이다. 시골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고교는 대구로 진학했다. ‘경북고’ 대신 ‘경북사대부고’에 입학한 것은 특차로 일찍 선발했기 때문이다. 법조계 동문 선배로 최재호(崔在護) 대법관과 정귀호(鄭貴鎬) 대법관 등이 있다.
 
  서울법대를 나와 1964년 제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해군 법무관을 거쳐 1970년 4월 대구지방법원 판사로 임관했다. 서울과 대구의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의 판사 및 부장판사를 지냈다. 1982년 대구지법 형사부 부장판사 시절, 간첩죄와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기소된 한 피고인이 불법구금과 고문에 의해 허위자백을 한 것을 알고 무죄를 선고한 일이 있었다.
 
  그 일로 안기부로부터 뒷조사를 당하고 대법원으로부터 인사 조치까지 받았다. 경향 교류로 지방으로 내려갔다가 제때에 서울로 복귀하지 못했고, 고등 부장판사 승진에도 탈락했다. 급기야 법관직 퇴출 직전까지 몰렸었다. 다행히 이일규(李一珪) 대법원장이 새로 취임하면서 겨우 구제된 일이 있었다.
 
  이후 수원지방법원장과 서울지방법원장을 역임했으며 1999년 10월 대법관에 임명, 6년간 재임했었다.
 
  퇴임 후에는 보수 성향의 변호사 모임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에 ‘고문’ 자격으로 참여하며 활발한 공익활동을 폈다. 그의 말처럼 “단순히 뒷방에 물러나 앉은 고문 정도가 아니라” 누구 못지않게 자유민주주의체제 수호를 위한 소송에 적극 나섰다.
 
  ―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뒤 법원의 변화 중 하나가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를 폐지한 것입니다. 왜 없앴다고 보시나요.
 
  “판사들의 유일한 승진 기회가 고등 부장이 되는 건데 없애버렸어요. 판사들이 경쟁을 하니 힘들고 괴롭거든요. 또 인사에서 100% 공정한 인사가 원래 있을 수 없어요. 보는 사람에 따라 ‘왜 저런 사람이 승진하느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요. 인사에서 70점만 받아도 잘한 인사라는 말이 있거든요.
 
  고등 부장으로 승진하려고 인사권자한테 영합하고 아부하는 폐단이 생긴다고 해서 고등 부장제를 없애자는 얘기가 그전부터 쭉 있다가 김명수 대법원장이 들어서면서 없애버렸어요. 이제 판사가 돼도 승진이라는 게 없어요. 재판을 잘하지 못하더라도 쫓겨날 일이 없게 됐어요. 결국엔 사법소비자인 국민이 손해 보지 않겠어요?”
 
  ― 법원행정처를 폐지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마련됐어요. 법원행정처도 사라질 운명입니다.
 
  “법원행정처가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사법농단’이 생겼으니 없애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법원행정처에 근무하는 법관들이 모두 엘리트거든요. 법원행정처를 거치면 고등 부장 승진도, 나중에 대법관이 되는 데도 유리하다는 인식이 있어요. 시기와 질투, 원망의 적(敵)이 된 겁니다. 참고로 저는 법원행정처 출신이 아니에요. 근처에 가본 적도 없고 근무한 적도 없습니다.
 
  법원행정처 대신 가칭 ‘사법행정회의’가 설립돼 사법행정에 관한 권한을 부여한다는데, 여기에 적정한 수의 외부 인사를 참여토록 한다더군요. (법원)행정처가 없는 사법부를 겪어보지 못했기에 앞으로 사법부가 어떻게 굴러갈지 참 예측하기가 어려워요.”
 
  ― 앞으로 사법부의 위상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추측을 해본다면, 그동안 대법원장이 법원행정처를 장악해 입법부, 행정부와 함께 3권(權)의 한 축으로 3000명의 판사들과 함께 사법부를 지켜왔잖아요. 그런데 그 (법원)행정처가 없어지고 외부 인사가 관여하는 ‘행정회의’가 된다면, 지금까지 행정처의 역할이나 활동은 없어지게 되겠지요. 최소한의 인사권과 예산만 가질 테지요.
 
  그렇게 되면 3000명의 판사는, 각자 흩어져 자기 업무와 자기 판결만 하는, 3000개의 새끼(작은) 사법부가 되는 것 아닌가요? 그렇게 되면, 법관들은 무지무지하게 약한 존재가 되어버릴 겁니다. 그동안 판사들의 판결은 대법원이라는 방파제, 울타리가 있어 정치적 외풍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었어요. 그러나 그 차단막이 사라져 이제는 판사들이 3000개의 파편화된 사법부가 될지 모릅니다.
 
  사법부 독립을 제일 많이 저해하는 것이 여론으로 포장된 이익단체, 이념세력의 목소리입니다. 이제는 시민단체, 이념단체, 정치단체의 외풍(여론)과 싸워야 할지 모릅니다. 제가 보기에 사법부가 태풍 앞의 촛불로 보입니다.
 
  결과적으로 3권 분립은 무너지지 않을까요? 그런 걱정이 되는데 모르겠어요. 아직 겪어보지 못해서….”
 
 
  대법관 수를 30명, 50명으로 늘린다면…
 
지난 10월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전원합의체 회의에 참석했다.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상고심 판결을 하고 있다.
  ― ‘사법농단’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상고(上告)법원을 왜 만들려고 했나요? 상고법원을 만들려고 정권에 유리한 재판 결과를 유도해 정권과 거래를 시도했다는 것이 ‘재판거래’잖아요.
 
  “왜 상고법원 얘기가 나왔느냐 하면, 대법원 업무 부담이 기절초풍할 정도로 많아요. 재판하는 대법관이 12명인데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사건이 대법원에 몰려요.
 
  이런 대법원 업무를 줄이는 방안을 찾기 위해 오래전부터 고민해 왔어요. 그 해결 방안의 하나가 상고법원입니다. 그러니까 고등법원에서 불복한 사건 중에 아주 중요하고 큰 사건만 대법원으로 올리고, 나머지는 상고법원에서 처리하자는 겁니다.
 
  이제는 상고법원 설립이 물 건너 가버렸으니 김명수 대법원장이 대법원의 업무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빨리 내놓아야 하지 않겠어요?”
 
  ― 대법원 업무 경감도 있으나 판사들의 자리를 늘리기 위한 목적도 있지 않나요.
 
  “그런 목적도 있지요. 고참 법관들… 예컨대 지방법원장을 마치고 다시 고등법원 부장으로 와서 재판하는 분들이 지금 수두룩하잖아요. 옛날에는 눈치를 줘서 (변호사로) 나가라 했는데 요즘은 변호사도 못해요. 이 사람들을 (상고법원에) 보낼 목적도 있었다고 봐요.”
 
  ― 대법관 수를 늘리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겠네요.
 
  “여당에서도, 대한변협에서도 대법관 수 증원을 요구하고 있어요. 지금 법원행정처장을 포함해 13명인데, 30명까지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과거에도 대법관 증원 얘기가 있었지만 대법원에서 반대를 했어요. 왜? 30명의 대법관이 모여 어떻게 전체합의를 합니까. 그리고 대법관 수가 30명이 되면 대법관 격이 뚝 떨어집니다. 지금 대법관은 장관급인데 30명, 50명으로 수를 늘리면 격이 차관급으로 떨어질 수밖에요. 그럴 경우 사법부 최고기관은 대법원이 아닌 헌법재판소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실, ‘사법농단’ 문건 중에 대법원이 헌재와 최고법원 위상경쟁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법관의 말이다.
 
  “관련 보도를 보면 2014년 12월 헌재가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과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의 의원직 상실 결정을 내린 데 대해 양승태 대법원은 ‘국회의원 지위존폐 여부 판단권’이 헌재에 있는지, 대법원에 있는지를 놓고 고심한 것으로 나와요.
 
  그러니까 헌재에는 없고 대법원에 있다는 쪽으로 하급심 판결을 이끌어 가려 했다는 것이 ‘사법농단’의 하나로 거론되고 있어요. 이게 모두 대법원과 헌재 간의 위상경쟁에서 나온 것이죠.”
 
  ― 대법원과 헌재의 위상경쟁에 대해 일선 판사들은 어떤 생각인가요.
 
  “하급심 젊은 판사들은 대법원과 헌재의 위상 다툼에 별 관심이 없어요. 최고법원 지위를 대법원이 지키든, 헌재로 넘어가든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로지 대법원만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을까요?”
 
 
  “이번 사태가 법원 스스로 자초했다는 점이 통탄스러워”
 
  현재 헌법재판관은, 헌재 소장을 포함한 9인이며 대통령과 국회, 대법원장이 각각 3명씩 선출하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헌법재판소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 대통령이 임명한다. 그러나 인사청문회가 대개 요식이다. 아무리 야당이 반대해도, 아무리 흠결이 드러나도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면 그만이다.
 
  “헌재 재판관은 사실상 정치적으로 임명하잖아요. 김명수 대법원장은, 헌재 재판관 3인의 추천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밝혔어요. 그러니까 헌재 재판관은 법원과 상관없이 이제는 정치권에서 임명하게 됐어요. 헌재는 완전히 정치기관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 정치기관이 되면 외부의 압력은 어떻게 막나요.
 
  “압박이 아주 심할 것으로 보입니다. 소위 군사정권 시절에는 국가권력이, 예컨대 정보기관이 사람을 법원에 파견해 감시를 했잖아요. 그땐 사법부의 독립이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었는데 요새는 여론으로부터의 독립을 걱정해야 할 판입니다. 어쩌면 오늘날 판사들의 재판독립을 침해하는 첫 번째 원인은 소위 이념 세력, 정치 세력의 압력입니다.
 
  만약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면 어떻게 됐겠어요. 법원 앞에 데모대가 덮치지 않았겠어요? 그 압력이 엄청났을 겁니다.”
 
  ― 여당 국회의원들이 (‘사법농단’ 관련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하는 판사들을 ‘사법방해죄’로 처벌하자더군요.
 
  “언론이 이념 세력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어요. 언론도 그런 압력을 받지 않겠어요? 이런 거대한 여론으로부터 사법부가 재판에서 초연할 수 있기란 상상하기 어려워요.”
 
  ―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처리 여부가 결국엔 관건이 되지 않겠어요? 검사 수십 명이 동원돼 수사를 하고 있으니…. 구속될 경우 사법부 위상은 어떻게 될까요.
 
  “이미 위상은 다 떨어졌고, 세계 사법(司法) 역사상에 전무후무한 기괴한 현상이 오늘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검사는 재판의 당사자입니다. 그들이 검사 수십 명을 동원해 몇 개월 동안 법원을 샅샅이 뒤져서, 뚜렷한 범죄 혐의가 드러났으면 모를까, 무슨 죄가 있는지를 찾아보자고, 현직 판사 수십 명을 조사하고, 허… 기괴한 일이야…. 이로 말미암아 법관들이 느끼는 치욕은, 치욕은 한계를 훨씬 넘어버렸어요.
 
  과연 뚜렷한 범죄가 드러난 게 있나요? 기껏 찾은 것이 직권남용이야. 직권남용죄를 그렇게 확대해석해서 다른 일반 사건도 표적으로 그렇게 하기 힘든데 재판부, 법원에 대해 수사를 한다는 것… 참 기괴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태가 법원이 자초했다는 것이 참 통탄할 일이에요. 법원이 앞장서서…. 검찰은 가만히 있었어요. 판사들이 앞장서서 수사 의뢰하자고 끌고 갔잖아요. 그게 통탄할 일이야.”
 
  지난 6월 11일 전국법관대표회의(의장 최기상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임시회의를 열어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관한 법관회의 선언’을 의결했다. 판사들은 “형사 절차를 포함한 성역 없는 진상조사와 철저한 책임 추궁이 필요하다”며 검찰 수사를 뜻하는 ‘형사 절차’에 뜻을 모았었다.
 
  이 전 대법관의 계속된 말이다.
 
  “고위 법관들은 ‘그걸 왜 수사 의뢰하느냐’고 했지만 젊은 법관들이 요구한 것이죠. 김명수 대법원장은 명시적으로 ‘수사 의뢰’는 못하고 법관대표회의를 존중하는 식으로 ‘검찰이 수사하면 적극 협조하겠다’고 했어요.
 
  저는 이번 (‘사법농단’) 사태가 법원 스스로 자초했다는 점이 통탄스러워요. 앞으로 사법부에 닥칠 외풍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음에도 왜 법원에서 스스로 수사 의뢰를 자초했는지, 여기에 어떠한 동기나 의도가 있는지 자못 궁금합니다.”
 
  ― 정치권력의 입김이 있다고 판단하시는 거죠.
 
  “지난 9월 13일 ‘법원의 날’ 행사 때 문재인 대통령이 법원에 갔어요. ‘사법농단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고 하니 김명수 대법원장이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화답을 했어요. 저는 거기에 돌아가는 상황이 압축돼 있다고 봅니다.”⊙
 
기억해야 할 ‘이념논쟁과 표현의 자유’ 판결
 
  “公的 인물은 국민에게 더 많이 노출되고 비판받아야”
 
  이용우 변호사의 대법관 시절의 판결 중에 2002년 1월 22일에 선고한 ‘표현의 자유’에 관한 판결에 눈길이 간다.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은 야당 정치인 시절, 이념적 성향이 불투명하다며 항상 우파 진영으로부터 공격을 받아왔고, 선거 때마다 색깔 논쟁이 불거졌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자신을 색깔 논쟁으로 공격했던 우파 언론인들을 형사소추하기 시작했다. 또 좌파 세력들이 우파의 이념 공격에 대해 명예훼손에 의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등 대대적인 역공세를 취했다. 각급 법원에서는 이런 민형사 소송이 계류되어 있었고 하급심은 정치적 이념에 대한 공격에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 전 대법관의 말이다.
 
  “우선 공적(公的) 존재에 대한 공적인 관심사는 일반 명예훼손 사건과는 다르게 취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표현의 자유 범위를 넓게 인정해야 해요. 공적인 인물은 국민에게 더 많이 노출되고 비판받아야 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요, 그것이 공익에 부합하기 때문이죠.
 
  당시 저는 정치적 이념 문제에 관한 ‘표현의 자유’의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입각한 헌법상 체제를 반드시 수호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특정 인물이 북한과 이념을 같이하는지, 북한과 통일전선을 형성할 가능성은 없는지를 주의 깊게 살피고 의혹이 있으면 널리 문제를 제기하여 검증받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죠.”
 
  이용우 대법관은 이 같은 이유를 들어 좌파 세력의 민사 소송을 모두 기각했다.
 
  또 2002년 1월 월간 《한국논단》이 ‘북한 조선노동당의 이익을 위한 노동운동을 했다’고 민주노총을 비난한 것이 명예훼손이라는 손해배상 소송도 기각했다.
 
  그러자 봇물 터지듯 터졌던 좌파들의 소송에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이다. ▲전교조가 자유시민연대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참여연대가 자유기업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배소 ▲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가 소설가 이문열을 상대로 제기한 손배소 ▲언론개혁시민연대가 《조선일보》를 상대로 제기한 손배소 등이 하급심에서 모두 기각되었고, 상고됨이 없이 모두 확정 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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