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이용우 전 대법관/ 법률신문] 사법부독립을 걱정하는 이유 - 법원조직법 개정은 신중을 기해야 -

by 운영자02 posted Sep 0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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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m.lawtimes.co.kr/Content/Opinion?serial=163867

2020-09-03 오전 9: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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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 들어 집권여당의 국회의원들은 바야흐로 사법부개혁에 시동을 걸고 있다. 법원조직법 개정안의 발의가 그것인바, 먼저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이를 대체하는 사법행정위원회를 신설하는 개정안을 발의하더니 이어서 대법관의 숫자를 현재의 14명에서 48명으로 대폭 늘리는 개정안도 제출하고 있다. 검찰개혁 작업이 대충 마무리되어 가니 다음 순서로 사법부개혁을 시작하기로 한 것인가.


오늘은 먼저,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그 대신 사법행정위원회를 신설하는 개정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개정안은 그 제안이유에서, 전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행정권 남용이 제왕적 대법원장 제도와 법관의 관료화 등 견제 받지 아니한 사법행정으로 인한 것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법행정의 주체를 법관 중심의 법원행정처 대신 비법관 외부인사 중심의 사법행정위원회로 교체함으로써, 사법행정의 영역과 재판의 영역을 엄격히 분리하고 다양한 시민의 목소리를 사법행정에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개정안은 사법행정위원회 위원 12명 중 8명을 외부인사로 채우고 그들 중에서만 상임위원을 두며, 위원들은 모두 국회에 설치된 추천위원회에서 추천하도록 하되 그 추천위원회의 위원 9명 중 여야정당(4), 법무부(1), 변협(1) 등 외부기관 파송이 6명이 되도록 하고 나머지 3명만 법관대표회의가 파송하도록 하면서 재적 과반수로 의결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구성된 사법행정위원회에서는 법관인사를 포함한 모든 사법행정을 총괄하는데, 여기서 법관인사라 함은 법관의 임명에서부터 연임, 퇴직은 물론 근무평정과 보직 전보 등 모든 법관인사가 포함된다. 한 마디로 말하면 정당 등 외부기관을 대변하는 비법관 위원이 주도하는 사법행정위원회에 법관의 보직 전보 등 모든 인사를 다 맡긴다는 것이다.

이렇게 제도를 바꾸는 것이 과연 개정안이 추구하는 대로 사법부의 독립, 재판의 독립을 더욱 강화하는 길이 될까. 필자는 심히 의문스럽게 생각한다. 개정안의 취지는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행정처가 동료 법관의 재판에 쉽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으니 이제 사법행정의 영역과 재판의 영역을 엄격히 분리하여 법관과 연이 닿기 어려운 비법관 외부인사에게 사법행정을 맡기면 사법행정이 재판에 개입하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가 타당한가. 어차피 인사권이란 제왕적 속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수명자는 인사권자의 심기를 살피게 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고 법관이라고 하여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법관의 재판도 인사권자인 사법행정위원회 위원 또는 위원을 천거한 정당 등 외부단체에 영합하려는 경향을 가지게 될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다. 비록 추천위원회 구성에 참여한 단체가 단일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의 유사 위원회 예로 보아 어차피 집권세력이 주도권을 가지게 될 것이므로 심기를 살필 대상이 혼란스러운 것도 아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제왕의 왕관을 대법원장에서 외부의 정치권력으로 옮겨 씌우는 결과가 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이로 인한 재판의 왜곡은 재판의 정치화 또는 인민재판화로 재판의 독립에 더욱 역행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겠는가. 개정안의 제안이유에서는 민주적 통제니 민주적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런 이유로 사법부를 정치권력의 종속변수로 삼는 것은 삼권분립과 사법부 독립의 정신에 반하는 것이 아닐까.

대법원도 지난 2018.12. 국회 사개특위에 제출한 법원조직법 개정의견에서 당시의 여론에 못 이겨 법원행정처 폐지와 사법행정회의 신설을 제안하면서도 그 위원 11인 중 법원 외부인사는 4인으로 국한하고 그 성격도 대법원규칙이나 예규의 제 개정, 예산 등 주요 사법행정사안에 대한 심의 의결기구로 한정한 것은 위와 같은 우려를 반영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 편, 이와는 별개의 문제로, 개정안이 의도하는 대로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대법원장의 권한을 형해화 시킨다면 삼권분립의 정신이 훼손되지 않겠는지에 관한 검토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삼권분립의 한 축으로서의 사법부(府)의 존재의미는 없어지고 그 대신 3000명 법관들의 개별 재판부가 3000개의 사법부(部)가 되어 보호의 울타리 없이 정치권력의 위세와 여론의 광풍 앞에 고립무원의 상태로 남게 되어 결국 인민재판의 길로 가게 될 것이 아닌지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요컨대, 지난 시절의 사법행정권 남용은 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의 문제였는데 사람이 바뀌었음에도 제도를 문제 삼아 이를 바꾸려 하다가 오히려 사법부의 독립을 근원적으로 훼손하는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게 되지 않을지 심히 걱정된다.


이용우 전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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